2022. 11. 7. 12:39ㆍ일본 교환학생/#3. Tokyo_Life
D+22
2018년 4월 9일, 월요일
봄 학기, 시작
일본에 도착한 지 약 스무 일 남짓이 흘렀고,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첫 학기의 막이 올랐다. 메지로대학의 경우, 교환학생은 모교에서의 학번이 아니라 교환 유학을 시작한 해를 기준으로 학번을 센다. 이로써 나는 18학번이 되었다. 갓 태어난 병아리가 된다면 이런 느낌일까. 내 생에 신입생의 기분을 느낄 날이 또 올 줄은 몰랐기에 한편으로는 감격스럽기도 했다.
메지로대학에서의 봄학기, 그중에서도 월요일에는 어학당 수업 하나와 전공 수업 하나를 듣는다.
전공 수업을 마치고 찍어 본, 10호관 계단 벽면 사진. 앞으로 많이 볼 장면이기도 하다. 봄학기 월요일을 함께할 전공 수업은 '미디어론(メディア論)'이다.
(*수업에 대한 후기는 따로 글을 작성한 바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글에서 확인하면 되겠다.)
[일본 교환학생 / 메지로대학 신주쿠] #3. 학부 수업 (2) - 미디어학과
*본 포스팅 내의 모든 글과 사진을 무단으로 전재하거나 재배포하는 행위를 금합니다. Copyright 2022. 유스. All rights reserved. 내가 메지로대학 신주쿠 캠퍼스에서 교환 유학을 하던 2018년은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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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반복해서 들었던 노래는 보아의 'Fly (Unchained ver.)'.
떠올리기만 해도 미소짓게 되는 존재들을 헤아려 보았다.
파랑, 검정, 초록, 회색, 끝없이 펼쳐진 하늘, 정처 없이 떠도는 바람, 나 자신에 대한 신뢰, 열두 살의 나에게 찾아와 내 안의 세계를 확장시켜주었던 고마운 음악들, 나의 카메라 '찍돌이', 교환 유학 일상을 함께하는 아이폰7, 앞으로 두 학기 동안 메지로대학에서 마주할 수많은 전공 이론들.
일본에 오기 전부터 스스로에게 누누이 강조했지만, 다시금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은 문장이 있다.
'절대로 시간에 휩쓸리지 말자.'
내 시간만큼은 내가 온전히 운용하겠다는, 처음 그 마음을 잃지 않겠다고 다시금 다짐해 본다.
D+23
2018년 4월 10일, 화요일
어제는 프롤로그, 오늘부터가 본편
어학당 수업 없이 학부 수업만 있는 날이다. '미디어사회특강3(メディア社会特講3)'과 '한일번역연습(韓日翻訳練習)'이다. 두 수업 모두 나에게는 일본어를 깊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 그 자체일 듯하다. 미디어사회특강3은 마치 테마 여행을 떠나는 듯이 나의 전공을 테마로 일본어를 공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일번역연습은 한국어를 일본어로 바꾸어 표현하는 힘을 갖출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제가 프롤로그 같은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본편을 시작한 느낌이었다.
D+24
2018년 4월 11일, 수요일
마음이 답답할 때면 일단 걷는다
하루종일 바람이 정말 많이 불었다. 본격적으로 태풍이 오면 오늘보다 바람이 더 심하게 불 것만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마음이 답답해서 기숙사 밖으로 나갔다. 행선지는 이케부쿠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몸과 마음에 환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냥 어디로든 나가고 싶었다. 나갈 땐 버스를 탔고, 돌아올 땐 걸어왔다.
이케부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길에, 만약 버스나 지하철을 탔다면 절대로 볼 수 없었을 하늘을 봤다. 자동차 다니는 소리로 가득했던 땅과는 다르게, 하늘은 고요했다. 저만이 보일 수 있는 색채를 띠며 시시각각으로 변해갔다. 열두 살에 처음 카메라를 잡았을 때부터 하늘을 찍는 걸 좋아했는데. 발 딛고 있는 모든 곳의 하늘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소망도 있었는데. 왜 그게 이제야 떠올랐을까. 왜 이렇게나 중요한 걸 잊고 있었을까. 아니, 지금이라도 다시금 생각난 게 감사할 따름이다.
하늘을 보면 기분이 좋다.
그 하늘을 걸으면서 보면 기분이 더 좋다.
그리고 그때 내 손에 카메라가 들려 있다면 기분이 더욱더 좋다.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잊지 마, 나 자신!
D+25
2018년 4월 12일, 목요일
개강 첫 주, 끝
외국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안전지대를 벗어나야 한다
개강 첫 주가 끝났다. 이번 학기는 금요일이 공강인 만큼 목요일이 평일의 끝인 걸로 해 둔다.
튜터 신청서를 제출했다. 아침에 책상을 정리하던 중에,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말하기 실력이 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작정 국제교류과에 가서 튜터를 신청하고 왔다.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안전 지대를 벗어나야겠지.
목요일에는 '음과 미디어(音とメディア)'라는 전공 수업 하나만 듣는다.
모교 전공 수업에서는 다뤄지지 않는 주제들을 이곳, 메지로대학에서는 한 학기 동안 다룰 예정이다. 이제 막 첫 주가 끝났지만, 수업마다의 주제가 흥미로워 더 몰입해서 듣게 된다.
오랜만에 맥도날드에서 감자튀김을 먹었다. 감자튀김 특유의 그 짠맛이 그리웠던지라 더 맛있었다.
도쿄에서의 매 순간은 도전의 연속이다. 내가 맞닥뜨리는 것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도전의 갈림길에 서면 빠르고 치열하게 머리를 굴려야 한다. 어쩔 땐 머리 굴릴 틈마저도 주어지지 않은 채 나의 직관으로만 움직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매우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재밌다. 즐겁다. 그리고 행복하다.
이 즐거움과 행복을 마주하다가 가끔 머릿속에 교환학생의 끝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이럴 땐 조금 착잡해진다.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이 즐거움을 보내줘야 한다고? 하지만 그땐 지금과는 또 다른 색깔의 행복을 발견하리라 믿는다. 예를 들어 지금 누리는 행복이 군청색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훗날의 내가 발견할 행복은 지금보다 명도와 채도가 조금 높아지고 빨간색도 반 방울 섞인, 오묘하면서도 예쁜 빛깔의 연보라색일 수 있지. 색상만 다를 뿐 아름다운 건 매한가지겠다.
어떻게든 행복하자고 결심했던 두 해 전의, 2016년의, 그 결심이 떠오른다.
그 결심, 늘 마음에 새기고 있고 바톤도 잘 이어받았으니 걱정은 넣어 두자.
D+26
2018년 4월 13일, 금요일
공강의 행복으로 내디딘 발걸음
신주쿠를 거쳐 이케부쿠로까지, 그리고 메지로 역에서부터 걷기
'공강'의 사전적 정의에는 '행복'이나 '여유'라는 단어 중 하나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기숙사를 나섰다. 오늘은 일본어 학습서를 사기 위해 서점을 돌아다니기로 마음먹었다. 첫 번째 행선지는 키노쿠니야 신주쿠 본점이었다.
책을 고를 때에는 한국어 발화자를 위한 일본어 학습서가 아닌, 일본어 발화자를 위한 한국어 학습서를 위주로 알아보았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한국어 표현을 떠올렸을 때, 그 표현을 자연스러운 일본어로 변환하는 연습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에는 번역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임하는 중이다.
키노쿠니야에서는 마땅한 책을 찾지 못했다. 신주쿠에서 두 번째 행선지가 있는 곳인 이케부쿠로로 향했다. 내가 갈 서점은 준쿠도 이케부쿠로 본점이었다. 역시 본점은 본점인가 보다. 서점의 규모가 꽤 컸다. 그리고 내가 원하던 책도 구입했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공부할 수 있는 책이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의외로 많이 헷갈리는 부분이 의성어와 의태어이기에 이번 기회에 탄탄히 공부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가 마음을 바꿔 중간에 내렸다. 그냥 걷고 싶었기에 메지로 역 정거장에서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걷기 시작하는데 문득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메지로대학은 왜 메지로 역과 멀리 떨어져 있을까?'. 궁금증은 일단 넣어 두고 길을 걷는 데에 집중하기로 선택했다. 걸음 하나하나마다 마주하는 풍경들이 고요하면서 아늑했다.
D+27
2018년 4월 14일, 토요일
그래, 주말에 한 번은 나가 줘야지!
그리고 나의 핸드폰을 오다이바 바닷바람에 그대로 보낼 뻔했다
살면서 이렇게 거센 바람을 마주해 본 적이 있었던가.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세찬 바닷바람을 맞고 온 날이었다. 그 바닷바람의 주인공은 바로 '오다이바'다.
주말인 만큼 한 번쯤은 나가줘야 하지 않을까 해서 오다이바로 향했다. 가방에는 카메라, 점심으로 먹을 미니 크로와상 두 개, 지갑, 핸드폰 등만 넣고 가뿐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하지만 그땐 몰랐지, 오다이바에서 바닷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리라고는. 잠잠해질 줄 모르고 거세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핸드폰이 날아갈 뻔한 순간이 있다. 자칫하면 국제 미아가 될 뻔했다.
시오도메로 돌아와서 '쓰루마루 우동(つるまるうどん)'에서 우동 한 그릇을 먹었다. 역시 속을 덥히는 데에는 따뜻한 국물 음식만한 게 없다.
식사 후에는 시오도메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대형 시계도 봤다. 2년 전의 도쿄 여행 당시에 일본인 친구로부터 이 시계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디자인한 시계라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다시 봐도 웅장한 스케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하루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바닷바람'이다.
오다이바는 날씨 좋은 날에 꼭 다시 한번 다녀오는 걸로.
D+28
2018년 4월 15일, 일요일
시간은 빠르지만, 오늘 하루는 여유롭게
일본에 온 후로 벌써 네 번째 일요일을 맞는다. 시간이 참 빠르다.
딱히 특별한 이벤트는 없는 하루였다. 오전에 이것저것 할 일을 했다. 마음 뿌듯하게 일본어도 공부했다. 요즘은 회화를 중심으로 공부하는 중이다. 최대현 선생님의 '네이티브는 쉬운 일본어로 말한다 : 1000문장 편'이라는 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책에서 공부한 표현을 단 문장이라도 실생활에서 직접 소리내어 말해보는 것이 나의 일본 교환 유학 생활 목표 중 하나다.
네이티브는 쉬운 일본어로 말한다 : 1000문장 편
20년간 200여 편의 일본 드라마, 영화에서 고른 네이티브의 생생한 표현 1000마디를 상황별로 정리한 책이다. 함께 제공되는 mp3 파일은 전문 원어민이 성우가 실제 드라마나 영화처럼 상황에 맞는
www.aladin.co.kr
오후에는 라이프에서 장을 봐왔다. 주전부리와 끼니가 될 만한 것을 위주로 사왔다. 컵누들 똠얌꿍 맛도 도전해 보려고 하나 사 왔다. 기숙사에 돌아와서는 느긋하게 뒹굴거렸다. 오늘은 유독 졸렵다. 아무리 자도 졸려운 느낌이다.
내일부터는 어학당 수업과 더불어 학부 수업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오리엔테이션은 모두 끝났다. 휴식 계획도 세워 놔야 마음이 편할 듯하다. 미래의 내가 지치지 않게끔 준비하는 선물이라 생각해야겠다.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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