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21. 15:46ㆍ일본 교환학생/#3. Tokyo_Life
D+36
2018년 4월 23일, 월요일
힘에 부친 나에게 주는 선물
하루종일 흐렸고, 지금도 흐리다. 우중충했지만 시원한 건 좋았다.
오전에는 학교 도서관에 들렀다. 요즘 관심 가는 분야들이 몇 있다. 브랜딩, UX디자인, 마케팅 등. 그중에서 UX디자인에 관한 책을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UX디자인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기에 기초적인 내용을 다루는 책을 찾던 차에, 마침 딱 알맞은 책이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 기본적인 내용을 다루는 책이라 주저없이 빌리기로 결정. 그리고 빌리는 김에 하라 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도 함께 빌렸다. 차근차근 읽어 봐야지.
유독 힘들었던 날이다. 전공 수업에서는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을 많이 놓쳤다. 일본어를 잘하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마음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수업을 마치자마자 바로 이케부쿠로로 향했다. 그러나 바깥에서도 역시나 나 자신에게 답답함을 느끼는 상황을 맞닥뜨렸다. 가게에서 점원 분의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었고, 내가 무언가를 말할 때 버벅대기도 했다. 답답하고도 답답했다. 초조함 없이 여유롭고 차분하게 일본어를 구사할 날이 있을까?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나카이 역 패밀리마트에 들러서 저녁으로 먹을 음식을 잔뜩 샀다. 유난히 벅찬 하루를 살아갈 때에 먹는 맛있는 음식은 크나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마음이 답답할 때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에게 해 주면서 그 답답함으로부터 스르륵 빠져나와야겠다고 결심해 본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야지. '좋아, 자연스러웠어!'
D+37
2018년 4월 24일, 화요일
야마노테선 여행, 시작
오늘부터 사흘간 학교에서는 '스타트업 세미나'라는 행사가 진행된다. 그 덕분에 학부 수업은 전부 휴강이다. 어학당 수업은 변동사항 없음. 하지만 나의 이번 학기 화요일은 학부 수업만 있는 요일이다. 생각치도 않았던 휴가가 생겼다.
나의 계획은 언제나 변화무쌍하다. 오늘도 새벽에 급히 하루 계획을 바꿨다. 원래 가려고 했던 곳 중 하나가 오늘 휴무일이라는 사실을, 계획을 다 짜고 나서야 알아버렸다. 그래서 당황하지 않고 나의 일본 교환학생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야마노테선 여행'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나의 야마노테선 여행의 첫 번째를 장식한 행선지는 바로 도쿄역이다. 밖으로 나설 땐 반신반의하며 우산을 챙겼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말 비가 왔다. 분명 날씨 앱에는 '소나기'라고 적혀 있었는데, 소나기라고 하기에는 꽤나 오랫동안 비가 내렸다. 그리고 지금도 비가 온다.
도쿄역 라멘 스트리트에 있는 '로쿠린샤(六厘舎)'에서 점심으로 츠케멘을 먹었다. 달걀도 하나 추가해서 알차게 먹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어보는 츠케멘이었는데, 생각보다 짭조름했다.
도쿄역 내부에는 오가는 사람이, 복잡할 정도로 정말 많았다. 하지만 역사 밖으로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하다. (물론, 출퇴근 시간의 풍경은 또 다를 수도 있겠다.) 오늘은 도쿄역 주변부를 많이 걸어다니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얼마 안 되는 거리를 걸어다니는 내내, 꼭 다시 한번 와서 천천히 구석구석 다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본 오늘의 도쿄역 주변 거리는 깔끔했다. 숨통이 트일 정도로 널찍해서 시원했다. 게다가 빌딩이 많은 와중에도 의외로 초록색이 조화로이 어우러져 있었다.
도쿄역 안에서는 길을 많이 헤맸고, 결국 계획했던 곳을 가지 못했다. '트래블러스 팩토리 도쿄역'. 어떻게든 가고 싶었던 문구점이라 인포메이션 직원분들께도 길을 여쭤보고 찾아다녔음에도 결국 가게를 찾는 데에 실패했다. 기존의 목적지를 도쿄역으로 바꾼 것도 실은 이 문구점을 위해서였는데. 같은 곳을 몇 번이나 맴돌았는지 모르겠다. 그래, 오늘 길을 잃은 건 나카메구로에 있는 본점부터 다녀오라는 교훈을 얻고자 함이었다고 생각해야겠다.
D+38
2018년 4월 25일, 수요일
여유롭게 시간을 쌓아간 하루
아침에는 세상이 무너질 듯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불더니, 오후가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아졌다. 맑아진 하늘은 마치 방긋 웃고 있는 듯했다.
어학당 수업만 있어서 하루의 일과가 일찍 끝났다. 늘 오늘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다음 주까지는 휴일이 많아서 마음이 한결 여유롭다. 골든위크, 만세! 그리고 타이밍 좋게 골든위크 바로 전주에 교내 행사를 기획해주신 분께도 무한한 감사를 돌린다.
오늘의 오후는 기숙사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는 시간으로 쌓아갔다. 빨래와 청소로 시작해, 어학당 발표를 위한 자료 조사도 했다. 오늘은 애착 인형의 손빨래를 큰맘 먹고 해냈다는 데에 큰 의의를 둔다. 인형이 은근히 물을 많이 먹어서 나는 애를 먹었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참 여유 있고 좋구먼. 당분간은 이 여유를 어떤 형태로든 충분히, 그리고 제대로 즐기고 싶다.
D+39
2018년 4월 26일, 목요일
휴일에는 휴일만의 일상을 펼치자
오늘도 역시나 휴일. 날씨가 참 좋다.
휴일이라도 일상은 계속된다. 오늘은 모교 학우와 함께 맥도날드에서 어학당 수업 조별 발표 준비를 했다. 신주쿠 구의 여러 지역 중 한 곳을 정하여 소개하는 과제인데, 우리가 맡은 곳은 신주쿠역 서쪽 방면이다. 이번 과제 덕분에 그간 잘 몰랐던 신주쿠 서쪽 부근에 대해서 많이 알아가고 있다. 더불어, 배울 점 많고 총명한 친구와 함께 과제를 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크다.
D+40
2018년 4월 27일, 금요일
산책을 해야지
도쿄에서 생활한 지도 어느덧 40일 차에 들어섰다. 앞자리 수가 바뀌는 날에는 특히나 시간이 빠르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요즘 길거리를 걸으면서 느끼는 건, 바로 꽃향기가 한창이라는 점. 한창 짙어진 꽃향기가 참 좋다. 특히나 기숙사 근처는 더 향기롭다. 집집마다 꽃을 기르고 있어서 더 그런가 싶다.
오늘 한반도에는 역사적인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을 모국에서 공유하지 못한 건 아쉽다. 하지만 그 역사적인 장면을 외국에서 보는 것도 쉬이 할 수 없는,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려니 한다.
이따금씩 하늘이 나를 압도한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는데, 오늘이 그랬다. 자연이 펼치는 웅대한 장면을 마주할 때면 그저 겸허해진다. 눈에 담기에도 벅찬 이 하늘을 카메라에는 어떻게 담아낼지 고민스러워지기도 한다. 처음 카메라를 손에 쥐었던 열두 살 때부터 늘 하고 있는, 난감하지만 행복한 고민이다. 나카이 역 부근을 산책하고 오리라 마음먹고 문 밖으로 발을 내디딘 오후의 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D+41
2018년 4월 28일, 토요일
학우들과 함께, 축제 가득 오다이바 즐기기
바람은 시원하고 햇빛은 따사로웠던 하루. '오늘 날씨 최고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지난 4월 초, 나에게 매서운 바닷바람을 제대로 보여줬던 오다이바. 그 오다이바에 다시 향했다. 이번에는 나 혼자가 아닌, 모교 학우들과 함께했다. 볕 좋고 바람 좋은 오늘, 우리가 오다이바에 향한 이유는 바로 푸딩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일본 각지의 푸딩이 한자리에 모인 행사였다. 구경하다 보니 이 푸딩 저 푸딩 다 사먹어 보고 싶었지만, 지갑 사정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많이는 못 샀고, 딱 두 개의 푸딩을 사 보았다. 하나는 화이트 초콜릿 가루가 뿌려진 푸딩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초콜릿과 와인이 곁들여진 푸딩이었다. 맛이 어떨지 기대된다.
푸딩 축제라 해서 푸딩을 판매하는 부스만 있는 건 아니었다. 마침 당이 떨어지고 목이 마르던 차에,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부스를 발견했다. 갈증을 해소시키고 당을 충전해 줄 딸기 맛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었다.
골든위크를 앞둬서 그런지 오다이바에서는 푸딩 축제를 비롯하여 여러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특히나 눈길을 끌던 축제는 '고기 축제(肉フェス)'. 다양한 축제 속에서 즐거움을 나누는 사람들 덕분에 오다이바에는 활기찬 기운이 가득했다.
푸딩 축제를 나서서 돌아다니다가 또 하나의 축제를 발견했다. 바로 '맥주 축제(옥토버페스트)'였다. 시원한 맥주도 한잔할 겸 맥주 축제도 구경하기로 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맥주가 참 달고 맛있었다. 학우들과 함께한 덕분에 고소한 소시지와 감자튀김도 맘껏 먹었다. 우연히 마주한 행복을 학우들과 함께 나누다 보니 깊은 추억이 쌓여 있었다.
살랑이는 봄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마신 뒤, 우리는 오다이바 대관람차를 타러 갔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비너스 포트에서 잠시 사진도 찍고 분수대 구경도 했다.
그동안 바깥에서만 봐 왔던 오다이바 대관람차에 직접 탑승하니 기분이 묘했다. 대관람차 안에서 바라보는 오다이바의 풍경은 이전에 지상에서 봤던 것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신오쿠보로 이동해서 '980떡볶이'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메뉴는 즉석 떡볶이. 같은 떡볶이라 해도 지난번에 엽기떡볶이를 먹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맛있었다. 타국에서 맛보는 즉석 떡볶이라 그런지 더 새로웠다. 떡볶이가 지닌 고추장의 맛은 꾸준히 먹어줘야 한다.
(*이 글을 쓰는 2022년 11월 기준, '980떡볶이'의 근황이 보이지 않는다. 구글 지도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긴 말이 필요없을 만큼 즐거웠던 하루. 만약 오늘을 하나의 단어로만 채워야 한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유쾌함'으로 채우리라.
D+42
2018년 4월 29일, 일요일
올 여름 더위는 이런 느낌이겠구나
어제 오다이바 푸딩축제에서 사온 푸딩을 먹으며 아침을 열었다. 이날 먹은 푸딩은 '유키후리 푸딩(雪ふりプリン)'으로, 홋카이도 시모카와에 위치한 '야나이 제과점(矢内菓子舗, 야나이카시호)'에서 만든 제품이다. 하얀 푸딩 위에 화이트 초콜릿 가루가 눈처럼 쌓여 있다. 푸딩 박람회에서 특별 금상을 받기도 한 푸딩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의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かみかわ「食べものがたり」: 矢内菓子舗「雪ふりプリン」 - 上川総合振興局産業振興部商工
www.kamikawa.pref.hokkaido.lg.jp
오전에는 잠깐 오치아이(落合) 역 근처로 외출을 하고 왔다. 무척 더웠다. 긴 시간 나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여름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듯 싶을 만큼 더웠다. 기숙사에 돌아와서 에어컨을 틀 수밖에 없을 만큼 짧고 굵게 더위를 겪었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침대에 누워 체력을 충전해야 했다.
나의 이번 봄학기 시간표 최종 버전. 보면 볼수록 알차고 깔끔하다.
어떤 고민이든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한다면 그 답이 나오지 않을까? 새로이 시작될 일주일은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지금까지보다도 더 자주 질문하며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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